기획연재 “김남운 귀국, 그후” 최종회


목사님이었습니다. 급하게 볼 일이 있으니 최대한 빨리 만남을 갖자는 용건이었습니다. 사실 당장 만나고 싶어하셨는데, 그 시간에 미국에서 인연 맺은 분들과 만남이 있으니 그날 저녁에는 어쩔 수가 없었고 새롭게 약속을 잡았습니다. 

그날 저녁 오랫만에 만난 귀한 인연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정말 부리나케 목사님를 비롯한 교회 스탭들과 미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빠르게 다시 잡힌 미팅에서, 안성수련원의 사역을 맡아 이끌어나갈 수 있겠냐는 뜻밖의 제안을 받게 되었습니다. 수련원이 교회 안팎으로 귀하게 쓰임을 받기 시작하는 상황에서, 교회와 공동체로도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상주하는 교역자가 필요하리라는 고민을 목사님께서 하셨을 것입니다. 게다가 수련원 바로 옆에 이웃하고 있는 국제학교(Valor International Scholars)와 협력관계가 생기면서 그곳에서도 교역자로 섬길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게 된 것이죠. 수련원을 좋아하고, EM 사역을 할 수 있는 제가 투입될 수 있는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았던 순간이었습니다. 

더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냥 가슴이 뛰더군요. 수련원에서의 삶과 사역도 기대가 되었고, 국제학교에서 저에게 주어진 미션에도 흥미가 많이 생겼습니다. 저는 당연히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로 현장에서 답을 드렸고, 채용과 취업의 절차가 이어졌습니다. 귀국 이후 답답하고 심지어는 절망적이었던 수개월의 백수 생활 끝에 드디어 길(아마도 ‘가장 선한 길’)이 열리게 된 것이죠. 그때를 회상해보면, 단순히 ‘일 자리’가 생겼다는 것보다는 이제 나에게도 섬길 수 있는 사역의 자리와 공동체가 생겼다는 기쁨이 컸던 것 같습니다. 모든 어려움을 예상하고 돌아왔지만, 사역에 대한 소망이 (예상했던 것과 별반 다를 것 없이) 비관 속에 희미해져가고, 백수 생활이 점점 길어지면서 사실 세상을 향한 방황의 시간도 있었습니다. ‘사역과 병행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해 온/오프라인의 이런저런 강사 자리를 알아보기도 했고 이곳저곳에 이력서를 넣으며 시간을 낭비했던, 귀국 이후 수개월의 시간을 떠올려보면 1년이 지난 지금도 그 순간이 감격적으로 느껴지네요. 

수련원에 내려가게 된 이후로는, 그곳의 삶을 새롭게 발견하며 하루하루를 "live to the fullest"할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위의 사진은 어떤 필터도 쓰지 않은 아이폰 사진. 새벽 일출의 풍경입니다!

일은 아주 빠르게 진행이 되어, 결정이 내려지고 절차가 마무리된 뒤 지난 해 8월초 안성으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안성에 내려가게 된 이후로는 (귀국 이후 허무하게 보낸 백수 생활에 대한 응답이었는지) 정신 없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마침 당시 부원장님이셨던 집사님께서 건강 상의 이유로 수련원을 비우셔야 했던 시기였기에 새롭게 합류한 관리집사님과 돌볼 일들이 적지 않았죠. 한참 수련회/수양회 시즌이었기에 방문하는 교회와 부서들을 응대하느라 바빴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도 ‘나의 사역지’가 생겼다는 (그것도 내가 청년 시절부터 다녔던 교회와, 내가 좋아했던 수련원에서 섬기게 되었다는) 기쁨에, 수련원에서 즐겁고 기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수련원의 이웃인 Valor International Scholars에서도 섬기게 되다

곧이어 국제 학교 사역도 이어졌습니다. Christian education의 대안적 모델을 찾아가려는 학교와 리더쉽의 비전도 귀했고, 수련원을 넘어서 지역과 젊은이들의 공동체를 섬길 수 있는 기회도 소중했습니다. 주중에는 학교에 나가 기숙사 사무실의 소소한 업무를 돕기도 하고, 채플과 기도회 등, 이런저런 사역을 돌보며 주일에는 학교에 남는 친구들을 대상으로 주일 예배를 이끌게 되었습니다 (1년을 지나고 이제 방학이 한참인데,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감개무량하네요…). 그래도 학교 스탭의 한명으로 학사 과정의 전반적인 일정을 모두 함께 했다는 것이 감사하기도 하고 또 의미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VIS 공동체와 1년을 함께 하며 선교여행까지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은 제주 저청교회에서의 프로그램 모습
그러나 무엇보다도 감격스럽고 행복했던 기억은, 두분의 집사님(현재 원장님 - 당시 부원장님, 그리고 관리집사님)과 교회를 세워나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두명의 성도가 있는, 세명이 예배드리는 교회였지만 제 인생 가장 행복한 교회 생활이자 사역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곧 사역의 1년을 채워가는 시점에서 ‘안성새사람교회’로 가꾸어 나가고 있는 교회와 공동체의 소망이 저에게는 가장 의미 있고 소중했던 은혜라고 생각이 됩니다. 

너무나 아름답고 평화로운 채플. 우리에게 이러한 예배의 터전을 주심에 감사!
예배의 하이라이트는 '침묵의 기도'

지난 1년간, 아름답고 평화로운 수련원에서 의미 있고 즐거운 사역을 하며 조금씩 평화와 회복을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한국 생활, 특히 서울 생활에 온전히 적응하고 주어진 환경을 인정(혹은 체념적 수용?)했다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서울에 나올 때면 여전히 적잖은 스트레스에 시달립니다. 그래도 안성에서 쌓은 하늘과 땅의 기운…? 덕분인지 (제 개인적 SNS나 제가 관리하는 수련원의 블로그/페북을 유심히 보신 분들께서는 그곳의 환경, 특히 땅, 나무, 수풀을 돌보며 제가 나눈 은혜와 소망에 관심을 가지셨을지 모르겠습니다. 맥추의 시즌부터 누리는 수확의 기쁨은 그 하이라이트라고 해도 되겠네요) 그래도 지난 1년의 시간 동안 과분하게 누렸던 은혜 가운데 모든 면에서 회복과 평화를 누리게 된 것 같습니다. 

땅, 바람, 풀, 나무, 그 속에서 신비와 섭리, 감사와 기쁨을 누리다. 맥추의 시즌 맞이한 거대한 수확의 기쁨. 그 어느 곳에서도 배울 수 
없었던,  소중한 배움과 깨달음의 기회 주심에 감사!

앞으로의 시간은 어떻게 흘러갈까요? 흘러간 1년만큼 즐겁고 의미 있는 시간이 허락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일이라는 것이 예측할 수 없기에, 어디서 어떤 변고가 생기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루하루, 기도 가운데 바람 소리, 풀 소리 소중히 여기며 하나님의 소리를 듣기 위해 애써야 할 것입니다.

아름다운 이곳, 자랑할 것은 그저 '아름다움'이나 값싼 healing의 평안이 아닌, 
사랑과 은혜, 소망을 체험하며 전달할 수 있는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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