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김남운 귀국, 그후" 번외편

* 혹 궁금하셨을 분들을 위해, 지난 1년 저의 일상이 어떠했는지 간략히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주일: 국제 학교로 가서 주일 예배를 드린다. 주보 접기, 의자 펴기 등부터 마무리 정리까지 모두 혼자 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는데, 가장 큰 어려움은 영어 설교도 아니고, 기타나 짐을 챙겨 산길을 오르내리는 것도 아닌, 바로 ‘혼자 찬양하기’이다. 아무도 노래를 안따라하는데 혼자 (영어로) 노래한다. 기타를 치면서… 그냥 벽 보고 혼자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좋아해서 수백번도 더 불러본 찬양임에도) 회중의 반응에 압도되어 다음 소절 가사도, 평소에는 무의식적으로 가던 코드도, 떠오르지 않을 정도다. 도저히 숨길 수 없는 '나의 생소리'에 내가 얼마나 노래를 못하는지 늘 절망적으로 체감하게 된다. 

이 사진만 보시면 위에 피력한 애로사항이 전혀 납득이 되지 않으실 텐데 (사이드로 싱어 두명, 우측엔 한 선생님이 키보드까지 해주고 있다) 이 사진은 선교여행 제주팀의 프로그램 모습이고 평소 주일엔 내 곁에 정말 아무도 없다. 

이후 수련원으로 이동. 환복. 안성새사람교회 예배를 드린다. 아름다운 채플, 환상적인 침묵의 기도 시간, 3명뿐이지만 은혜가 꽉찬 시간으로 보낸다. 비록 앞에 계신 분은 두분이지만 더 열심히 말씀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름다운 예배당, 채플 모습. 사진은 작년 크리스마스 무렵
(나무는 수련원 전지 작업한 이후 남은 소나무를 썼다)

이후 함께 식사. 보통은 간단한 걸 먹는데, 세 명인지라 거한 걸 먹기도 한다. 그리고 휴식. 


때로 유족분들이 오시면 강제로 대화에 참여해야 할 때도 있는데 없는 경우 쉰다. 하키 시즌에는 한국 이른 오후가 서부 저녁 밤시간이라 스포츠를 볼 수 있다. 책을 보거나 운동을 하거나 밖에 나와 멍하니 있기도 한다. 대한민국에 나보다 운좋은, 행복한 교역자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 

수련원은 전공간이 카페이자 리딩룸이다. 주일 오후 누리는 평안 (thank you Jesus)

월: 쉬는 날인데, 못쉴 때도 많다. 수련원에 일이 있거나 방문객이 있거나 할 때는 하는 수 없이 원장님과 함께 일을 한다. 때로는 원장님과 외출을 하기도 한다. 쉬는 날이지만 어디를 가거나 하지는 못하고 주로 독서 등 내 시간을 갖는다. 안성 시내에 가서 장을 볼 때가 많다. 


화: 아침에 묵상 등 시간을 갖고 학교로. 참고로 학교로 향하는 출근길은 수련원의 ‘자연심방길’인데, 이보다 아름다운 출퇴근길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학교로 향하는 길에 보이는 수련원 철문 밖의 ‘기도처’에서 짧은 묵상의 시간을 보낸다. 

아름다운 나의 출퇴근길, '자연심방로'

반쯤 꺾여 넘어진 나무가 묘하게 숲속의 '문'을 만들었다. 출퇴근길 이곳을 지날 때마다 기도처 삼아 two-minutes retreat의 시간으로...

학교에서는 수업(그리스어/라틴어)을 하거나 기숙사 사무실 업무를 돕는다. 격무에 시달리거나 하는 것은 아닌데,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이고 정신이 없는 일이 많아 진득히 독서하거나 말씀을 보거나 하지는 못한다. 점심을 학교에서 먹고 돌아온다. 


수련원에 돌아오면 두분 집사님을 도와 이런저런 일을 한다. 꽤 힘든 육체 노동일 때도 있지만 흔한 경우는 아니고, 두분을 돕는 수준에 그칠 때가 많다. 


저녁은 가끔 함께 외식을 하거나 각자 해먹는다. 수련원의 밤은 아름답다. 찬 겨울도, 봄, 가을, 여름도 모두 운치가 있다. 내 공간이 없기 때문에 수련원 객실, 펜션/게스트 하우스 등을 옮겨다니며 지낸다. 저녁에 개인적인 시간을 보낸 뒤 보통 일찍 잠자리에 든다. 

지난 겨울 메타세콰이어 길. 이것보다 멋진 크리스마스 트리가 어디 있을까?


수: 화요일과 비슷한 일상으로 지낸다. 수요일은 학교에 채플이 있어 바쁜 날이다. 


목: 화요일과 같은 일상을 보낸다. 

조금 오글거리지만 토마스 머튼 놀이, 헨리 나우웬 놀이. 정작 글을 많이 읽거나 쓰지는 못했다.

금: 오전에는 조금 여유가 있어, 집사님들과 일을 하기도 하다 점심 정도에 서울로 향한다. 서울에 와서 필요한 일을 하기도 하고 (머리를 자른 다거나, 은행 일을 보거나, 사람을 만나거나 등등) 교회에 미리 가 있는다. 금요일 밤에 있는 기도회의 찬양을 준비한다. 그전에 교역자 회의가 있어서 6-7시까지 미리 교회에 가 있는다. 기도회를 마치면 안성으로 가지 않고 서울 집으로 돌아간다. 서울 집에서 하루를 보낸다. 수련원을 떠나 서울로 오는 이 날이 너무 싫은데, 이제는 매주 계속되는 이 외유를 좀더 의미 있게 보내려 노력 중이다. 사실 안성에서는(수련원과 학교 모두) 집중해서 글을 쓰거나 독서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의외로 적은 편이다. 서울에서 비는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노력 중. 



수련원에서 하는 노동은 농사, 청소, 정비, 눈치우기, 조경, 제초, 각종 시설 관리 등등이 있다. 군대생활과 유사한 면이 많다. 본인은 기술이 없기 때문에 부사수 역할 내지는 훨씬 더 허드렛일을 한다. 난이도부터 일의 성격까지 수련원 노동은 대단히 다양하다. 위 사진은 두분이 자연심방로를 보수하고 VIS로 가는 길을 보수공사하는 모습. 


토: 집에서 안성으로 돌아온다. 보통은 오전에 일찍 집을 나선다. 돌아와 주일 준비 등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점심 정도에는 안성에 도착한다. 도착하면 또 수련원의 이런저런 일들을 하고 주일 준비를 한다. 주일 준비는 (당연히) 말씀 준비, 주보 악보 등등 자료 작성 출력하기 등등. 그래도 주말은 주말인지라, 토요일 오후와 저녁은 좀 개인적인 시간을 가지면서 쉴 수 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