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돌아와서' 힘들었던 것만은 아닙니다. 미국에 '두고 와서' 힘들었던 것도 있었답니다. |
잘 있어라, LA Kings & Staples Center 크윽 ㅠ (저 길거리 핫독 꽤 괜찮습니다. 드셔보시길...) |
And goodbye to Ms. I wasn't proud of you, but I loved you. And I will miss you. |
90년대-2000년대 초반 군대만 해도 부대 내에서 이런저런 동물을 길렀습니다. 개가 흔했고, 닭이나 토끼가 있는 곳도 있었죠. 제가 배치된 자대에는 마침 주먹만한 시골 똥개 강아지 몇 마리가 부대 장병들의 사랑(과 동시에 일부 싸이코패스들의 잔혹한 고문)을 받고 있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갓 태어난 쪼그만 강아지들이 너무 이뻤고, 전입 신병인 나의 초라함과 미약함을 보면서 그들에게 나름 감정을 이입했던 것도 기억이 납니다. 폭풍성장한 이후 그들의 운명이야 생각해볼 필요 없이 뻔한 것이지만 그래도 도시의 애완견과는 또 다른 행복을 누린 녀석들이라 생각합니다.
한데 이 쪼그만 강아지들이 어디서 왔는가 하면, 거의 모든 녀석들이 인근 부대 혹은 동네 주민들이 기르던 어미 개들로부터 온 경우가 많습니다. 가깝게는 같은 부대내 다른 중대(제 경우는 포대)에서, 인근의 다른 부대에서, 아니면 부대 근처 동네 주민들이 기르던 어미 개가 새끼를 펑펑 낳으면 이리저리 나눠줘버리는 것이죠.
귀여운 강아지들이 우리 부대 곳곳에 흩어져 사랑(과 고문)을 받고 있던 봄날, 제가 숨막히는 갈굼과 가혹행위를 견디고 있던 경기 북부의 화창한 봄날, 부대를 걷고 뛰다 보면 눈에 들어오는 슬픈 광경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흩어진 새끼들을 찾으러 부대 안으로 들어온 어미가 포상(跑上)위로 올라와 슬피 짖는 모습이었습니다. 잃어버린 새끼들을 찾겠노라 이곳저곳을 헤매며 끙끙대는 어미를 볼 때면 제 맘이 찢어지는 듯 했지요.
매일 아침 구보 이후 아침을 먹고 돌아오면 어미개가 포상을 누비며 잃어버린 새끼를 찾으려 울부짖었다 https://themomandcaregiver.com/magazine-articles/lost-pets-how-to-find-them/ |
미국에서 돌아온 이후, 몸과 마음을 힘들게 한 것들이 (앞선 편에서 찌질하게 늘어놓은 것처럼) 많이 있었지만 가장 슬펐던 것은 신학교 생활 가운데 너무나 큰 기쁨과 감사, 행복을 누렸던 LA 모교회의 어린이 사역을 두고 오게 된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토록 소중했던 주일의 일상이 갑자기 사라져버린 것도 어색했습니다. 주말이 되기 전에 어떤 준비를 할 필요도 없이 “그냥 주일에 교회에 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 처음에는 편하더군요. 하지만 이내 예배와 말씀을 준비할 필요가 없다라는 것이 공허하게 느껴졌습니다. 마치 늘 벤치에만 앉아있어야 하는 운동선수처럼 허전하고 답답했죠. 게다가 이 ministry life의 공백이 영원해지지는 않을까 하는 답답함은, “내가 ‘사역자’일 수 있을까, 과연 나는 ‘쓰임 받을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군에서 전역한 이후부터 오랜 시간 몸 담아온 나의 모교회도 마냥 편한 곳이 더 이상 아니었지요. 이제는 더 이상 청년도, 평신도도 아닌 (그러나 그와 동시에 완전한 어른으로, 사역자로 인정받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서울의 모교회도 때로는 어색하고 심지어 불편한 곳이 되었습니다. 한때 열정으로 섬기며 잘 한다 칭찬받던 청년 시절에는 그렇게 편하고 좋았던 나의 집이, 이제는 눈치를 봐야 하는 묘한 공간이 되어버린 것이죠. 동아리방 같았던 청년부 예배 공간도, 목사님 사무실도, 모두 다 어색해지고 눈치가 보여서 아무도 없는 곳을 일부러 찾아 시간을 때우기도 했습니다. 10년이라는 시간이 아주 아주 긴 시간이었구나 (超-core-인싸에서 아싸 중에 아싸로), 실감할 수 있었네요.
그러나 이 모든 것들보다 더 맘이 아팠던 것은 그토록 아끼고 사랑했던 영혼들이 이제 더 이상 제 곁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삶의 가장 큰 일부였는데 하루 아침에 사라져 버리다니, 처음에는 멍…하다 차츰 매주일이 우울해졌습니다. 교회로 향할 때면 설레는 마음으로 아이들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옮겼는데 이제는 그냥 이렇게 만날 일 자체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면 허전함에 가슴이 아팠죠. 아이들이 자라가는 것을 보는 것, 그들이 그렇게 자라며 나의 이름을 부르고 내게 달려오는 것, 모든 것이 신비였고 기쁨이었는데 이제는 끝이구나… 2년 반이 넘게 함께 하는 시간 동안 태어나고 자라난 아이들을 떠올리면, 그리고 그들과 그렇게 사랑과 은혜를 나눌 수 있음을 생각할 때면, 감사하기도 했지만 이제 내 삶에 채울 수 없는 큰 결핍이 생겼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거대한 결핍은 저를 마치 새끼들을 죄다 빼앗겨버린 채 이곳저곳을 헤매며 구슬피 우는 어미 개처럼 만들었습니다.
사소한 인간적 그리움이야 해결할 방법은 많지요. 핸드폰 하나면 언제든 서로의 얼굴을 보고 대화할 수 있는 세상이니까요. 하지만 (후임 사역자를 비롯한)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배려를 생각하면 답답하지만 그냥 이렇게 지낼 수 밖에 없겠다는 체념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러다보니 아이들이 매일같이 꿈에 나오더군요. 밤마다 꿈을 꾸면 아이들이 나타나는데, 함께 지내던 때의 그 사랑스런 모습으로 제 앞에서 웃고 뒹굽니다. 하나같이 다들 까르르 웃고 뛰며 노는데, 이상하게도 제 곁으로는 더 이상 오지 않더라구요. 그래도 그 모습을 꿈 속에서 지켜보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하루는 (또 꿈속에서) 아이들이 제 곁에서 뛰놀길래 다가가서 아이들을 안으려 해봤죠. 그런데 아이들이 죄다 바윗덩이처럼 무거웠습니다. 만나면 언제나 하늘 높이 들어올렸고 안아줬던 아이들이었는데, 안기는 커녕 두팔로 들어올리지도 못할 정도로 무겁더라구요. 이런 꿈들이 매일같이 이어졌습니다. 웃고 뛰노는 아이들, 다가서면 다가오려고 하지 않고, 다가가 안아주려고 하면 들어올릴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운 아이들…
어느 날 밤에 또 비슷한 꿈을 꿨습니다. 서운하다기보다는 정말 이상하다… 생각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이런 소리가 들려옵니다.
“Hey, you now have to put them down and let them go.”
그렇죠, 이제 move on 해야죠. 제 인생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웠던 시간을 정리하고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 하는 때이죠. 꿈에서 조금 정신이 돌아오자 이내 머리 속이 맑아집니다. 그러더니 곧 마음이 공허해지네요. 꿈에서 깨기 싫어 웅크려 잠을 다시 청하려 돌아누우니 눈물이 핑 돕니다.
조금 더 자라고 나면 아이들은 저를 아마 기억하지 못할 겁니다. 그래도 그들의 가슴 속에 제가 전하고 우리가 서로 나눈 사랑이 자리하고 있음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제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제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들도 ‘그’ 사랑을 전하고 나눌 것입니다.
Thank you LORD!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