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김남운 귀국, 그후" 4편

(이번 편에서는 귀국 이후 이어진 백수 생활 중 어느 하루의 일상을 하다체로 전하고자 합니다)

귀국 이후 반가운 것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반가운 것들 중 가장 반가웠던 것은한국어로 된 책들을 싸게실컷 사 볼 수 있다는 것

오랫(무려 6)만에 교보문고를 찾았다그 옛날 좌석 버스를 타고 가야 했던 시절의 광화문과 교보문고의 추억이야 진작에 사라졌지마는다시 찾은 광화문과 교보문고는 너무 불쾌하고 불편했다

정말 근 10년만에 다시 찾은 김포 이모댁. 다시 만난 이모댁 식구들과 만남은 귀국 이후 큰 위로가 되었다. 귀국이 가져다준 또 다른 선물.

어딜 가도 사람들이 많았고 서점(이라기에는 이제는 그냥 쇼핑몰)의 구석구석까지도 이 인파로 인해 겪는 불편을 피해가는 것이 고역이다그나마 인문학신학외국 도서 섹션은 사람이 적은 편이다그러나 이곳은 구조 자체가 비좁고, 바로 이 한적함을 이용한 이들이 나름의 도피처로 이용하고 있었기에 내가 안식할 곳은 그 어디에도 없어 보였다

좌석버스를 타고 반나절 여행을 해야 갈 수 있었던 시절의 교보가 그립다.
http://www.kyobobook.co.kr/storen/MainStore.laf?SITE=01&Kc=GNHHNOoffstore&orderClick=rvd

내가 평안을 찾을 수 있는 곳은 어디인가?

무지막지한 더위와 최악의 대기 상태 때문에 실외로 나가는 것은 엄두도 나지 않는다그래도 근처 만만한 커피샵이라면 랩탑 하나 펴두고 책볼 수 있는 공간은 나지 않을까? (미국 생활특히 시애틀 생활에서 가장 즐겁고 행복한 기억이라면 내가 좋아하는 로컬 커피샵에서 책을 보거나 과제를 하거나 하는 등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Seattle 생활 중 가장 사랑했던 Wallingford의 Chocolati Cafe! 아... 내 사랑 ㅠㅠ

그리고 다운타운/차이나타운의 보석같은 곳, Panama Hotel의 커피샵. 세상에 이런 곳이 있을까 또??

일단 커피샵에 자리만 잡고 나면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것 같기는 하다하지만 시내나 역세권의 커피샵들은 프랜차이즈로컬을 불문하고 사람이 너무 많고 복잡하다젊은이들어르신들아이들 할 것 없이어디를 가도 많은 손님들로 북적이는 데다가매장에 죽치고 있는 이들에게 최대치의 스트레스를 주는 것이 목적처럼 보이는 음악과 스크린 광고가 정신을 사납게 한다그뿐인가아이들이 어떻게 하든 전혀 개의치 않는 엄마들술 대신 커피를 마시러 온 (즉 커피샵을 술집처럼 혹은 술집 대신 이용하는 듯한 사람들 등커피샵도 평안과 안식을 구할 수 없는 곳임에 곧 좌절하게 된다 (* 한번은 강남의 커피샵을 갔다가 죄다 떳다방/부동산 업자들의 아지트가 되어 앉을 자리조차 없는 것을 보며 대,,,대충격을 먹기도…). 

한데 커피샵에서 어찌어찌 육체적-정신적 평안을 찾는다 해도정작 내 안에 평화가 없으니 어찌 참된 평안을 찾겠는가책을 보려 해도 제대로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랩탑을 열어 스크린을 응시하며 할 일을 찾지만 (번역이력서 작업이런저런 지원에 시간을 많이 쓰기는 했다사역자도구직자도백수도학생도 아닌 내 자신에 혼란스러워하며 시간만 낭비하기 일쑤였다.  

시내를 나갔으나 알차게 시간을 보내지는 못하고 돌아오던 어느 날여느 때와 같이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했다항상 그렇듯 사람은 많고날은 더우며차 안은 복잡하다답답한 차 안에서 군중들을 지켜보는 것이 괴롭다내리는 사람들이 모두 내리기도 전에 왜 굳이 먼저 타려고 하는 걸까? (심지어 앉을 자리를 확보할 확률이 제로인 상황에서도??) 왜 이 사람들은 문 앞에혹은 한복판에서 길을 막고 서 있는 걸까왜 이들은 얼마 되지도 않는 공간조차도 비집고 들어오는 것인가왜 이들은 이리도 크게 통화/대화를 하는 걸까특히 출퇴근 시간을 지나 밤이 되면 술고기담배 냄새가 진하게 베어 있는좁고 더운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이 너무나 괴로웠다.

어떤 면에서는 차라리 발디딜 틈 없는 편이 낫다. 최소한 치고 가는 hitter들은 없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712241353001
 

스트레스를 견디고 집으로 향하는 여정은 지하철에서 종료되지 않는다마을버스에서 외출의 스트레스는 절정의 클라이막스를 찍는다화생방 개스실이 끝나면 고이 보내주는 게 아니라개스실 문 앞에서 피티 체조로 더 굴리는뭐 그런 개념이랄까

마을버스에서 체감하는 스트레스도 지하철과 다를 게 없다마을버스의 경우 협소한 공간이 주는 좀더 특별한 숨막힘이 존재한다사실 마을버스에서 느껴지는 스트레스는스트레스라기보다는 서글픔에 더 가깝다. “왜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의 서글픔이다마을버스? 말이 예뻐 마을버스이지자가용의 편이를 누릴 수 없는 이들역세권 혹은 대중 교통의 혜택을 직접적으로 누릴 수 없는 수많은 서()민들을 지하철 역으로 실어나르는 셔틀버스에 불과하지 않나. 골목을 질주하는 콩나물 시루 셔틀버스에 몸을 싣고 있노라면 어느새 이땅 민중들의 삶을 동정하게 된다

영어 관용구로 치면 이런 게 바로 'save the best for last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705242144015

좁은 골목길을 3,40으로 밟는 기사님의 질주가 끝나면콩나물 시루를 가득 채우고 있던 버스가 아파트 단지단지를 지나며 정류장마다 승객을 우웩우웩 토해내고 나면 그제서야 좀 맨 정신으로 돌아오게 된다그리고 아주 뒤늦게하루의 일상을 찬찬히 되돌아보며 모든 문제는 그저 내 안에 있음을 새삼스레 발견하게 된다내 안에 평안이 없고내 안에 사랑이 없는데 어찌 내 삶에 평화와 은혜가 있을 수 있겠는가

주변을 둘러보면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섬기고 사랑할 사람들 천지임을 뒤늦게 발견한다녹초가 되어 귀가하는 사람들더 나은 미래를 위해 온종일 자기계발에 돈과 시간을 퍼부었을 것처럼 보이는 학생들딱히 어떤 희망이나 소망도 없어 보이는 젊은이들세상이 강요하는 강박 속에서 헤매이며 고통받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바라보며 나의 천박함과 이기심무엇보다 근본적 자격 없음을 반성하게 된다나는,

1. 감히 선교사를 운운하면서도 '현지인들과 그들의 삶'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조금도 하지 않았다적지 않은 유럽 선교사들이 그러했듯이나는 오히려 현지인들을 무시했으며 그들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려 하지 않았다오히려 그들이 나와 같지 않음에 불만을 가졌고 심지어 그들을 멸시했다.
2. 미국 생활에서 누린 그 평안함그 여피함(yuppiness)에 젖어 나의 정신적육체적 well-being만을 추구했으며지금의 나를 만든 지난 10년의 시간에 대한 어떠한 감사함도 잊은 채 지냈다.
3. 그러면서도 내 삶의 소중한 일부였던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정작 너무나도 무심했다 (내가 스스로만을 돌보며 지내던 그 시간 동안 돌아간 생명태어난 생명, 각종 관혼상제와 경조사가 얼마나 많았던가?). 무엇보다 “나는 왜 이곳에 있는가에 대한 사명을 헤아림에는 게을렀다
4. 그러나 최악 중의 최악은이 모든 교만 속에서 스스로를 기만하며 섬기는 자의 허울을 쓰려 했다는 것이다

마을버스 문이 열린다한 발을 내딛기도 전에에어컨 나오는 버스가 천국처럼 느껴질 정도의 습도와 온도가 덥쳐온다밤 10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지만 아이폰 온도를 확인하지 않아도 30도가 훌쩍 넘을 것임을 몸이 이미 느끼고 있다. “오늘은 또 어떻게 자야 할까?”

집을 향해 걸으며 간신히 찾은 맨 정신을 다잡는다

그래내가 왜 이곳에 있는지 기억하자지금까지 그러했듯 역사하심과 인도하심을 신뢰하자!” 

무엇보다 기도와 묵상을 그치지 않고 정진하면말씀에 나를 싣고 가는 삶을 계속해 나가면 이후의 문이 어떻게 열리는지 볼 수 있으리라!

습관적으로 귀에 꽂아 넣은 이어폰을 뺀다. “Statement of Calling”에도 썼듯, ‘관세음목사(Avalokita pastor)’가 되겠다고 하지 않았나이 세상의 소리를 듣고 보아야(perceive)’ 하는 것이 먼저이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집으로 향하는 순간어디서인가 거대한 세단이 나를 향해 오는 것을 느낀다.

설마 이 좁은 골목에서 나를 제치고 지나가겠다는 거는 아니겠지?” 세단은 이내 나를 향해 달려오더니 (20킬로 이상은 밟은 듯경적을 두드려댄다엉겹결에 반대편에 주차된 또 다른 세단을 향해 몸을 바짝 붙히자세단은 유유히 내가 맨 가방을 스치고’ 지나간다

야 이 XXXXX야아아아아아아아아내가 왜 너를 피해가야 돼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

사역자…? 선교사…? 풋, 아하하하!

그해 여름그렇게 나는 서서히 미쳐가고 있었


(다음편 예고 – 돌아온 고향에서 '마주한 것들' 때문에 힘이 들었던 것만은 아니다미국 생활 가운데 두고 온 것'으로 인해 받는 고통 또한 컸다그중에 늘 맘을 아프게 한 것이 하나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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