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끝나면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죠. 늘 그런 거는 아닌데, 어떤 영화는 출연 순서에 따라 (“order of appearance” – 무식한 시절에는 ‘잘 생긴’ 순서대로 나오는 건 줄 알았음) 이름을 나열하기도 합니다. 이번 편에서는 귀국 이후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 가장 불쾌했던 것, 가장 괴로웠던 것을 순서대로 혹은 기억에 진하게 남는 순서대로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1. 정말 어마어마한 기후, 그리고 재앙 수준의 대기 상태
- 비행기 캐빈을 통과하던 순간 느껴진 그 ‘훅’하는 열기...! 그리고 긴 공항 통로를 벗어나며 목격한 ‘뿌연(?)’ 고향의 바깥 풍경을 보는 순간 이미 무언가 불안했습니다. “아,어쩌면 내가 당연하게 누려왔던 행복의 평형 상태(equilibrium of happiness)가 곧 무참히 파괴되겠구나” 하는 불안감이 닥쳐왔지요.
공항 자동문을 열고 나오며 느낀 어마어마한 습도, ‘정말 여기서 사람이 살 수 있는 것인가’ 싶은 수준의 대기 상태. 무거운 짐을 한가득 끌고 공항철도를 찾아나서자 옷은 (당시 민소매 티에 셔츠 하나를 걸친 차림이었는데) 이미 땀으로 거의 다 젖었고 호흡기가 답답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인천공항에서 종로3가역을 향해가는 열차 안에서부터 우울한 느낌이 들더군요.
놀라운 것은 그 당시가 5월 중순이었으니 여름은 시작도 되지 않았던 거죠. 한국의 여름이 기온 자체가 그렇게 높고 습도가 엄청날지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내가 나고 자란 곳의 여름이 정말 이랬었던가? 게다가 어디를 가도 엄청나게 많은 차와 인파, 거리에는 에어컨과 아스팔트가 뿜어내는 열기들까지, 그렇잖아도 더운 더위를 더 숨막히게 하는 요소들이 더해져 여름 내내 저는 ‘여기가 진짜 지옥이로구나’하는 생각을 하며 지냈습니다.
시간대와 온도를 비교해보시라. 거의 대만수준으로 덥다. 사진에는 없는데 바그다드보다 살짝 선선한 정도... |
에어컨이 없는 집에서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이곳저곳을 헤매던 것도 고역이었습니다. 카페같은 곳은 쾌적하기는 한데 돈이 들고 오래 있기 쉽지 않고, 어찌어찌 시원한 곳을 찾으면 사람이 너무 많거나 눈치를 너무 봐야하거나 하더라구요.
더위도 더위였지만 (사실 ‘뜨거움’ 자체만 두고 보면 제가 지낸 Pasadena, Southern California가 더 뜨겁습니다) 육체적으로 정말 괴로웠던 것은 ‘미세 먼지’(라고 말도 되지 않게 미화되어 불리는) 대기 상태였습니다. 제가 신학교 생활을 한 LA쪽이 아마 미국에서 대기 상태가 가장 좋지 못한 곳 중 하나일 텐데 서울과 한국은 그냥 평가가 불가능한 수준입니다. 제가 체험한 최악의 대기가 2000년도 초반의 중국 낙양과 하얼빈이었습니다만 그보다도 훨씬 더 나쁜 것처럼 느껴집니다.
귀국한 이후에는 한동안 목이 너무 아프고 가래가 계속 끼어서 고생했습니다. 감기처럼 목이 붓는 건 아닌데 잠을 자기 어려울 정도로 가래가 끼어 침을 삼키기 힘들 정도였네요. 리스터린 같은 가글도, 무자비한 가래 뱉기 시도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소브레롤’이라는 가래를 진정시키는 약을 먹으면 한 몇시간 가라앉았지만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 별 효용이 없어지더군요. 더위+습도+대기상태+가래(목붓기와 심지어는 귀가 막히는 느낌 – ‘기가 막힌’ 게 아니라 진짜 이비인후과적으로 ‘귀’가 막혔음)까지 이 콤보는 정말… ㅠㅠ
가래에 효과가 좋은 소브레롤. 그러나 약효는 길지 않은 듯? |
저에게 처자식이 있었다면 아마 불체를 감수하고서라도 트럼프가 버티고 있는 미국으로 돌아갔을 것 같습니다.
2. “Excuse-me-less-ness”
- 제가 미국화가 너무 많이 되어서일까요? 사람들 사이에서 일상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것이 대단히 불편하고 불쾌하게 느껴지는 것이 많았습니다. 왜 남의 공간을 리스펙트하지 않을까? 아니, 어떻게 (한 마디의 사과나 양해도 없이) 메고 있는 가방을, 심지어는 남의 신체를 그렇게 당당히 툭툭 치고 지나갈 수 있을까? 혹시 내가 hockey fan인 것을 알고 고향에서 그 그리움을 달래라고 일부러 hit을 해주는 배려일까? 물론 종이 한 장 건내 받으면서도 ‘thank you’를 해야하고 옷깃이라도 스칠까 싶으면 ‘excuse me’를 해대는 (사실 엄청난 거리감과 차가움을 주는) 그 문화가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돌아온 내 고향이 uncivilized한 야만인들이 살고 있다는 교만한 생각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마주하는 일상(꽉꽉 차 있는 차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늘 체험하게 되는 이 ‘excuse-me-less-ness’)으로 인해 외출만 하면 순간순간이 고역이었습니다.
하키에 대한 그리움을 잊게끔 늘 공공장소에서 hit을 해주시는 여러분, 감사합니다. |
3. 좁다, 모든 곳이 말도 안될 정도로 죄다 좁다!
- 진짜 너무 좁습니다. 모든 곳이, 다니는 모든 곳이 너무 좁게 느껴졌습니다. 길도, 차도, 버스도, 지하철도, 도로도, 상점도, 모든 곳이 너무 좁아 답답하고 숨이 막힐 정도였네요. 더위에 대한 낯설음만큼이나 이 ‘공간적 협소’도 돌아온 고향에서 너무 이상하고 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동네 골목에서 차를 피하려 (차가 나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를 피하려) 보행로 끝으로 바짝 붙어 피해야하는 경험을 마지막으로 해본 것이 대체 언제였던가? 이 ‘좁음’은 극심한 더위, 일상에서 마주하는 스트레스(대표적으로 위의 2번 예)와 맞물려, 저의 멘탈에 상당한 데미지를 주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좁고, 덥고, 계속 hit을 당하니 멘탈이 무너집니다 ㅠ (http://www.hankookilbo.com/News/Read/2016102115565) |
* LA SoCal의 traffic이 워낙 나빠, 서울이랑 비슷하겠거니… 했는데, 서울이 훨씬 더 최악입니다. 거기다 정말이지 배려심 없고 각종 (특히 안전) 개념 없는 운전자들이 워낙 많아 그나마도 혼잡하고 바쁜 도로 사정은 미국 거대 도시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나빠 보입니다. 골목길을 누비는 중형, 대형 세단들을 피해 다녀야 하고, 뻑하면 그들로부터 경적 소리를 듣고, 그 좁은 동네 길을 30, 40킬로로 달려대면서 급정거를 반복하는 마을 버스 속에서 휘청이고 있노라면 (물론 이것이 기사님들의 열악한 근무 환경에 기인하는 것임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만)엘에이 대중교통의 홈리스 발냄새+약냄새와 freeway traffic이 그리워질 정도입니다.
이 그림이 차라리 그리워질 정도의 서울 트래픽 (https://la.curbed.com/2017/9/28/16379510/la-traffic-freeway-congestion-405-101) |
4. 흉측한 콩크리트 덩어리들, 그리고 추한 간판들
- 저는 본래 “한국은 000데, 00는 000다” 식의 비교를 싫어합니다. 특히 그 비교가 무지하고 악의적일 수록, 화자(話者)가 가진 데이터가 불완전할 수록 (대부분의 경우는 단편적인 single story에 기반한 데이타인 경우가 많음), 그런 비교는 듣기 거북하죠. 그럼에도 한국에 돌아와 느낀 솔직한 감상이 ‘한국의, 특히 서울의 풍경이 너무나 건조하고 흉하다’는 것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애틀처럼 아름다운 호수나 SoCal과 같이 시원한 해변과 야자수가 여기는 왜 없는 것이냐는 한탄을 하는 게 아닙니다. 천편일률적으로 늘어선 볼품 없는 아파트들과 너저분한 간판들을 볼 때마다 수많은 사회경제적 이유로 ‘이렇게 밖에’ 살 수 없는 우리의 처지가 한스러웠습니다. 그러면서도 정말로 ‘이렇게 밖에’ 살 수 없는 건가 하는 서러운 생각도 들더군요.
이런게 진짜 안구 테러 아닐까? 꼭 이런 간판이 필요합니까? 기왕 하는 거면 좀 아름답게 해볼 수 없습니까??? |
개인적으로는 이런 광고와 현수막들이 가장 꼴보기 싫더군요. 그래도 우리 고덕-명일동은 푸르고 아름다운 편이라 생각했는데 도처에 이런 광고와 플랭카드들이 널려있습니다. |
공항에 내려서 보이는 그 풍경들이 처음엔 낯설고 언짢다가 수일내 고향의 그 풍경에 적응이 되자 뭔가 편집증적인 생각까지 들기도 했습니다. 흉물스런 콩크리트 덩어리들, 아파트들이 마치 사탄처럼,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맘몬(Mammon)의 화신처럼 보였달까요? (우리 가족이 87, 88년부터 근 30년을 살아온 강동구 고덕동은 미국 생활을 마치고 돌아오자 정말 강산이 변해버린 수준이었습니다. 동네가 온통 새로 지은 아파트 단지로 뒤덮여 있더군요)
“요한이 밧모섬에서 본 환상도 이런 게 아니었을까? ‘로마’를 상징하는 로마의 물산과 선박들이 소아시아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본 그도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저 흉측한 공구리 덩어리들이야말로 이 땅에 새겨진 자해의 칼빵 자욱들이다!!!”
제 여생의 목표가 어쩌면 “아파트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는 것”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 덤벼라, 사탄아, 죄다 쓸어버려주마!” (http://news.hankyung.com/article/201801256439i) |
5. 불친절함
- 많은 사람들이 흔히 한국이나 일본같은 나라의 서비스 수준이 높고 고객들에게 친절한 것처럼 생각하죠. ‘손님이 왕’이니 ‘갑질’이니 하는 말들도 기본적으로는 인간 사이의 관계와 관련한 것이지만 대부분은 서비스업이나 기타 사회경제적 관계에서 나타나기 마련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고향에 돌아오니 일반적인 한국 사람들이 (특히 젊은이들, 그중에서도 젊은 여성들) 대단히 불친절하게 느껴집니다. 어떤 때는 백인들이 아시안들에게 하는 인종차별을 당하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사실 미국에서의 인종 차별도 ‘인종’ 그 자체, 즉 단순히 우리가 ‘Asian’이기 때문에 차별한다라기보다는 그 인종이 가진 속성을 (예를 들어 아시안의 경우라면 영어 부족, 키 외모 등 신체적 특징, 혹은 문화적 특이성 등) 무시/멸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실제로, 아시안이어도 영어를 잘 하고 키도 크면서 외모가 훌륭하면, 게다가 사회경제적 위치까지 갖추고 미국의 social norm에 자연스럽게 따라가는 것처럼 보이면 인종 차별이나 무시를 당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면 한국에서 제가 느끼는 이 불친절함도 미국의 인종 차별과 사실 큰 차이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사람의 외모나 행색에 근거해서 사람을 대하는 불친절이 (외모와 행색에서 내세울 것이 없는) 제 입장에서는 대단히 가슴 아프게 느껴졌네요.
요즘엔 저의 자녀 세대나 마찬가지인 어린 친구들과 함께 하면서도 이런 생각이 더 커집니다. 특히 세상 자체가 각박해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구요.
미국 백인들의 허울뿐인 (때로는 위선적이기까지 한) 낯선 이를 향한 화사한 미소와 눈웃음이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내가 밟고 있는 이땅의 아름다움을 찾기 위해 사실 많은 노력을 해봤습니다. 그래도 피해갈 수 없는 그 놈의 아파트... ㅠ |
6. 그외 기타 (miscellaneous)
- 왜 남자들이 모두 게이처럼 보일까? (절대 LGBTQ 비하/혐오 발언 아닙니다) 패션, 말투, 눈빛까지, 왜 다들 그런 것일까?!?! 무엇보다 그들의 패션이 (특히 헤어스타일이) 정말 너무 이상했습니다. 철저히 패션의 관점에서만 본다면 제 생각에 전세계 게이들의 천국은 시애틀도, 샌프란시스코도 아닌, 바로 서울입니다.
- 위와 같은 맥락에서 전 개인적으로 매번 면도하는 게 정말 괴로웠습니다. 미국에선 일주일이고 심지어는 이주일이고 그냥 다녔는데 면도를 자주 하려니 너무 불편하고 괴롭더군요. 그렇잖아도 피부도 민감하고 트러블이 많은데 ㅠ
- 젊은 여성들이 똑같은 화장과 패션을 하고 있는 것도 좀 이상했습니다. 유행인거구나, 이해는 되는데 굉장히 이상하더군요. 특히 상체는 보수적으로 입고 하체는 상당한 노출을 하는 것도 이제 뭔가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겨울이 되면서 좀 잊혀졌는데 여름에 많은 여성들이 흰 반팔 티 위에 드레스 같은 것을 입는 것도 저는 좀 충격이었네요. 그냥 티셔츠 없이 레귤러 핏으로 입었으면 훨씬 이뻤을 거 같은데, 그게 여기서는 오히려 부담스러운 노출처럼 여겨지나 봅니다.
- 집에서 파스타가 나오는데 젓가락에 김치가 나오더라구요… ㅠ 포크와 파마산 치즈가 나와야 하는 거 아니었나!?!?!? 멘탈이 무너지니 나중에는 이것도 짜증이 나더군요.
- 왜 식빵을 전자렌지에 데워서 물컹하게 먹는 건지??? 늘 whole wheat를 반쯤 굽다시피 해서 먹었던 저에게는 이런 빵을 먹는 것도 고역이었습니다… ㅠ
- 그리고 왜 한국에선 greek yoghurt를 안먹는 걸까…? ㅠㅠ
매일 아침 너무나 당연히 여겼던 그릭 요거트... ㅠㅠ |
6. Cross-less-ness
- 그러나…!
이 모든 것들 중에서 저를 가장 힘들게, 절망적일 정도로 괴롭게 한 것은 이 땅의 ‘십자가 없음(cross-less-ness)’이었습니다.
교회를 다닌다거나 크리스찬이라는 것이 요즘처럼 부끄러운 때, (추저분한 개인적 일탈부터 집단적 중범죄 행위에 이르기까지) 목사들과 교회의 추태가 뭐 대수냐 싶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제도로서의 기독교와 교회는 무너진지 이미 오래인 상황에서 ‘십자가’ 운운하는 것이 새삼스럽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서 ‘크리스찬’으로 살며 저를 정말 힘들게 한 것은, ‘과연 이 땅에 복음이 있는가, 복음이 가치 있게 여겨지는가’ 하는 회의감이었습니다. 일반 크리스찬들의 마음 속 역시 우리 사회에 만연한 맘몬 숭배(Mammon cult)로 가득함을 볼 때마다, 그리고 그 맘몬이 불어넣는 이기심과 허영심의 주술에 사로잡혀 헤어나오지 못함을 볼 때마다, 이곳은 이제 Ba’al의 터전이구나 하는 좌절감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쩌면 이땅에 또 상당한 피가 뿌려져야만 진정 복음이 전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뜻 있는 동지들과 모여 성명서라도 읽고 집단 자살이라도 해야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습니다.
내가 이곳에서 감당해야 할 몫이 무엇일까? 고민하고 있으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무기력해지곤 했네요.
* 그러던 어느 날...
이렇게 고향의 무지막지한 더위가 제 영-육-혼을 녹여버리던 어느 날, 렌지에 데운 빵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어느 순간, 문득 “무언가 아주 심각한, 대단히 그릇된 모순이 내 안에 가득함”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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