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김남운 귀국, 그후” 2편

나는 선교사이다나는 선교사로 내 고향에 돌아간다.”

한국으로 돌아오기를 결정(했다라기엔 사실 돌아오는 두어달 전까지도 미련을 놓지 못했던)하는 순간 제가 마음 속으로 다짐한 바입니다
2009년 9월에 한국을 떠났으니 거의 9년을 미국에서 보낸 셈. 30대의 전부를 보내다시피한 그곳을 떠나게 되다. 

이것은 대책 없이 넘치는 허세나 패기도 아니었으며 장기 백수의 운명을 마주한 상태에서 무책임하게 거는 자기 최면도 아니었습니다

1. 한국에서 나에게 주어질 사역의 몫이 분명 있을 거라 확신했었고
2. 고향 땅의 사람들(특히 젊은이들)의 삶, 그리고 제도로서의 기독교가 황폐화되어 가는 모습을 오래동안 외국에서 목격하면서

’ 땅에 작더라도 유의미한 변화를 줄 수 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기 때문이었습니다. 귀향한 느헤미야처럼 와르르 무너져버린 성벽을 재건하지는 못하더라도, 벽돌 한장은 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고민이었죠. 

제가 미국으로 떠난 것이 2009년 9월 8, 2PM의 박재범이 쫓겨나듯 미국으로 (공교롭게도 그 역시 시애틀-정확히는 근처Shoreline-출신게다가 이 친구와는 비록 아주 짧았지만 교회 생활까지 같이 함돌아간 바로 다음 날이었습니다근 10년의 시간, 30대의 전부를 미국에서 보낸 셈이죠. Reverse-culture shock을 훨씬 뛰어넘는사실상 역이민이나 마찬가지인 (그리고 그 고충이 이미 눈에 훤히 보이는상황에서, ‘나는 선교사이다라는 독한 마음을 먹지 않으면 맨 정신으로편한 마음으로 돌아올 깡다구가 없어서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9년만에 돌아온 나의 고향
마지막 한국 방문은 2012년 늦여름. 런던 올림픽과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그해 여름을 꽉 채웠던 기억이 난다. 당시 주요 이벤트로는 친척 형의 결혼식 참석이 있었다. 사진의 두 아이는 폭풍 성장해버리고 나머지 등장 인물들은 모두 늙어가고 있으심... 

한국에서의 삶은 고향 땅을 밟는 그 순간부터 쉽지 않았습니다비행기의 캐빈을 통과하던 그 순간부터 느껴진 어마어마한 습도무거운 짐을 가득 지고 공항 문을 나서며 체감한 가히 충격적이었던 대기 상태...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을 최악의 선교 험지(險地)로의 파송 정도로 받아들인 채우울한 마음으로 고향 땅을 밟은 저에게 돌아온 한국은 그 시작부터가 육체적심리적영적 재앙 체험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제일 충격적이었던 것불쾌했던 것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들을 떠오르는 순서대로 한번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이는 단지 돌아온 한국이 얼마나 최악이었던가를 회상하는 것을 넘어서스스로의 영적 상태를 돌아볼 필요가 있기에 개인적으로는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차였습니다). 

1번은...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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